창원일보 | 2010/12/31 12:38

 

 

조정호 선생, 조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마음의 빚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자주 찾아보지 못하고 이렇게 지면을 통해 안부를 묻습니다.

 

푸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부산시 동구 초량1동 994-72번지는 조 선생이 돌보는 장애아들의 보금자리 `늘사랑가족`이 있는 곳이지요. 오래 전, 내가 늘사랑가족을 찾았을 때 나는 깨끗하고 안락하게 정돈된 집안의 분위기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장애아들의 집이기에 냄새나고 어수선한 곳일 것이라는 어리석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자신을 발견하고는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요즘은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차별과 냉대는 장애아들의 여린 영혼을 짓누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나의 걱정이 기우(杞憂)이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합니다.

 

조 선생, 우리는 질풍노도의 청소년 시기에 같은 야간고등학교에서 친구로 만났었습니다. 나라 전체가 참으로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우리 야간학교의 친구들은 스스로 학비를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현실을 살아야 했지요.

 

 

혹독한 찬바람이 몰아치는 광야에서 알몸으로 버티는 겨울나무들처럼 그래도 우리는 꽃향기, 풀향기 가득한 봄을 기다리는 희망을 안고 현실을 버티었습니다. 조 선생은 고교 시절, 항상 조용하고 단정한 여학생이었어요. 남을 비판하거나 말다툼을 벌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언제나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절하고 다정한 소녀였지요.

 

조 선생은 해맑은 모습만큼 마음 또한 비길 데 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소녀였어요.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투영된 탓이었겠지요. 자신의 가족조차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에 조 선생은 낳은 부모마저 버린 불쌍한 장애아를 집으로 데리고 와 씻고 입히고 먹이며 동생처럼, 자식처럼 키우기 시작했다지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한 명, 또 한 명 장애아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 키우기 시작하였고 결국은 그것이 영원한 처녀엄마, 조 선생의 일생의 업이 되었군요.

 

막내딸의 이러한 행동을 막지 않고 오히려 힘이 되어주신 조 선생의 부모님이나 언니들은 또 얼마나 고마운 분들인지요. 그러나 조 선생의 혼기(婚期)가 꽉 차자 집안 어른들은 결혼하기를 독려하였고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떠밀리다시피 맞선을 보게 되었다지요. 맞선을 보는 자리에서 조 선생은 "저라고 왜 가정을 이루어 부부간의 알콩달콩 사랑을 가꾸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장애아들을 팽개치고 결혼할 수는 없습니다.

 

 

장애아들을 키우는 것을 용인(容認)하신다면 결혼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지요. 맞선을 보던 청년은 깊이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며 "정말 존경합니다. 그러나 조 선생의 삶을 같이 감당할 자신이 없어 결혼은 어렵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요. 어쩌면 그것은 조 선생이 원하던 대답이었겠지요.

 

연약한 몸으로 온갖 물건을 머리에 이고 다니며 행상을 하다가 병이 나 목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어도 세상이 외면하는 장애아들의 어머니가 되어 스스로 고생을 자처한 그 정신은 쟌다르크 보다 용기 있고 나이팅게일 보다 성스러운 모습으로 나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조국을 위해 총칼을 들고 싸우기보다, 목숨을 걸고 전쟁터를 누비며 부상병을 치료하기보다 더 어려운 것이 평생을 바쳐 장애아들을 돌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장애아들의 삶의 공동체를 <늘사랑가족>이라고 명명한 것은 사회는 물론이요 가족들도 외면하는 장애아들에게 따뜻한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지요. 늘사랑가족의 장애아 수를 아홉 명으로 제한한 것도 인원이 너무 많으면 가족의 의미가 희석(稀釋)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기 때문이라지요. 장애아 한 명을 키운다는 것은 정상아 3~4 명을 키우는 것 이상으로 정신적, 시간적, 물질적 어려움이 따르는 법이지요.

 

 

태어날 때부터 열 손가락이 모두 없이 콩알 같은 손가락의 흔적만 있는 아이에게는 의수(義手)를 착용해주어야 하는데 그 가격도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성장에 따라 갈아 끼워주어야 한다지요. 정신지체장애자 소녀가 나이가 들어 생리를 하게 되자 채워준 생리대를 빼버리고 이불이며 방안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든다니 편한 삶을 사는 우리가 어찌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다행히 뜻을 같이 하는 자원봉사자도 생겨나고 조 선생이 고생하는 것을 안 어느 독지가가 찦차를 선물하여 큰 힘이 되어 주었지요. 이처럼 아름다운 일에 동참하고 격려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늘어난다면 이 세상은 더 한층 희망의 샘이 솟아나리라 믿습니다.

 

어느 해 명절을 앞두고 지방의원 한 사람이 사진사까지 대동하여 떡과 라면상자를 가지고 와서 생색을 내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지요. 그때 조 선생은 그 사람에게 `여기는 당신들이 생색을 내는 곳이 아니다. 그러니 이것들을 가지고 가시라`고 준엄하게 내쳤다지요. 칸트는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말라`고 했는데 어려운 삶을 사는 장애아들에게 라면 한 박스 사 주고 생색을 내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그 행위가 얼마나 가증스러웠겠습니까?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의 치부(恥部)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조 선생은 아홉 명의 장애아들이 따뜻한 가정에서 잘 자라 꿋꿋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물론, 자신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보듬는 사람이 되기를 항상 기도하며 질곡(桎梏)의 삶을 자처했어요. 그러나 아홉 명의 장애아들을 비좁은 연립주택에서 키울 수 없었을 때가 가장 막막했다지요.

 

따로 독립하기 위해 집을 얻으러 다니는데 누가 장애아들이 아홉 명이나 되는 사람에게 선뜻 집을 내어 주겠어요? 실망과 피로가 겹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혹시나? 하고 어느 전셋집 초인종을 눌렀더니 주인아주머니가 조 선생을 물끄러미 보시더니 `혹시 며칠 전에 TV에 나오신 분이 아니냐?`고 묻더라구요.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그 아주머니가 반색을 하며 `우리 부부가 TV를 보면서 어쩌면 이 세상에 저런 분이 계시는가?

 

 

우리도 기회가 되면 꼭 저런 분을 돕자고 다짐을 했었는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면서 2층집을 내어 주시더라구요. 나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래도 이 세상엔 아직 눈물이 메마르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조 선생은 자신의 선행을 선행이라 내 세운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거창하게 `하늘이 주신 소명` 운운 하지도 않았어요. 늘사랑가족을 지키는 일이 어렵고 힘들어도 이 사회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고 그 일을 자신이 하고 있을 뿐이라는 지극히 겸손한 마음에서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조 선생. 태풍과 눈보라가 몰아치고 성난 파도가 생명을 위협해도 외딴 섬의 등대지기는 졸음의 유혹과 싸우며 밤마다 어김없이 등불을 밝힙니다.  그 등대지기의 성도 이름도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어두운 밤바다에 빛을 주는 등대지기가 있기에 길 잃은 배는 안전하게 항구를 찾아 들 듯이 조 선생의 거룩한 사랑과 희생정신은 이 사회의 찬란한 등불이 되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조 선생. 오늘이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러나 내일이면 또 다시 희망찬 새해의 태양이 떠오를 것을 믿으며 어두운 밤, 등불을 밝히는 조 선생의 건강과 늘사랑가족의 행복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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